먼저, 지금 규칙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세 가지 층이 따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법, 플랫폼, 그리고 도구. 많은 혼란이 이 셋을 하나로 묶어 생각하는 데서 옵니다.
① 법 — 의무를 진 쪽은 생각보다 좁습니다
한국은 2026년 1월 22일 AI 기본법이 시행됐습니다. 생성형 AI 결과물에 표시 의무를 법으로 규정한 건 세계에서 처음이라 많이 인용됩니다. 다만 실무에서 오해가 잦은 지점이 있습니다.
- 의무의 주체는 AI 제품·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 입니다. AI를 업무·창작 도구로 쓰는 이용자는 직접적인 의무 대상이 아닙니다.
- 딥페이크처럼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운 생성물은 사람이 명확히 인식할 수 있는 방식으로 표시해야 합니다. 그 외의 경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디지털 워터마크도 허용됩니다.
- 최소 1년의 계도기간이 함께 운영되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광고주나 제작사가 당장 자막 한 줄을 안 넣었다고 처벌받는 구조는 아닙니다. 그래서 "법이 아직 느슨하니 그냥 가자"는 판단이 나오기 쉬운데, 현장에서 먼저 부딪히는 건 법이 아니라 다음 항목입니다.
② 플랫폼 — 여기가 훨씬 빠릅니다
유튜브는 사실적인 AI 생성·변형 콘텐츠에 대해 업로드 시 공개를 요구합니다. 중요한 건 범위가 생각보다 좁다는 점입니다.
- 공개 대상 — 실제 인물이 하지 않은 말이나 행동을 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 실제 장소나 사건의 영상을 바꾸는 것.
- 대상 아님 — AI로 각본을 쓰는 것, 썸네일을 생성하는 것, 일반적인 TTS 음성을 쓰는 것. 용을 타고 나는 것처럼 명백히 비현실적인 장면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2026년 5월부터는 기준을 넘는 사실적 AI 콘텐츠에 라벨이 롱폼은 플레이어 아래, 쇼츠는 화면 위에 붙습니다. 창작자가 신고하지 않아도 플랫폼이 탐지해 라벨을 붙일 수 있습니다.
밝힐지 말지는 점점 선택지가 아니게 됩니다. 남는 선택은 '내가 밝히느냐, 남이 붙이느냐'입니다.
③ 도구 — 서명이 기본값이 되어 갑니다
생성·촬영 도구 쪽에서는 C2PA(콘텐츠 자격증명) 채택이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소니·니콘·캐논·라이카 같은 카메라 제조사가 참여하고 있고, 구글 픽셀 10은 촬영한 사진에 기본으로 서명을 넣습니다. 어도비 파이어플라이는 생성 결과물 전부에 자격증명을 심고, 오픈AI도 C2PA 메타데이터에 워터마크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습니다.
즉 제작 파이프라인의 양쪽 끝에서 "이건 어떻게 만들어진 파일인가"가 자동으로 따라붙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지우는 쪽이 더 번거로워지는 구조입니다.
위 내용은 2026년 10월 기준으로 정리한 요약이며,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캠페인에는 해당 시점의 원문과 플랫폼 정책을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진짜 질문은 "밝히면 손해인가"
규칙을 다 읽고 나면 결국 이 질문이 남습니다. 저희가 두 개의 채널을 운영하면서 확인한 답은 이렇습니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건 'AI로 만든 것'이 아니라 '속았다는 느낌'입니다. 이 둘은 전혀 다릅니다. AI로 만든 장면이라는 걸 알고 보기 시작한 사람은 연출로 받아들입니다. 반면 한참 보다가 뒤늦게 알게 된 사람은 그 영상만이 아니라 브랜드 전체를 의심합니다.
비용으로 따지면 더 분명합니다. 밝히는 비용은 자막 한 줄과 설명란 한 문장입니다. 숨기다 드러나는 비용은 한 편이 아니라 그동안 쌓은 시리즈 전체입니다. 연재로 운영할수록 이 비대칭은 커집니다.
저희가 쓰는 네 가지 기준
① 숨기지 않되, 앞세우지도 않습니다
"AI로 만들었습니다"를 첫 1초에 띄우지 않습니다. 그 1초는 이야기 몫입니다. 대신 영상 설명란과 끝 카드에 고정된 한 줄을 둡니다. 매 편 같은 자리, 같은 문장으로요. 자리가 고정되면 찾는 사람은 늘 찾을 수 있고, 숨긴 적은 없는 게 됩니다.
②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은 합성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선입니다. 저희 시리즈의 인물은 전부 가공의 인물이고, 특정 실존 인물을 닮게 만들지 않습니다. 실제 사건이나 장소를 바꾼 것처럼 보이게 하는 연출도 쓰지 않습니다. 이 선을 지키면 대부분의 법적·윤리적 논란은 애초에 발생하지 않습니다.
③ 제품은 실물을 기준으로
이야기는 지어내도 제품은 지어내지 않습니다. 생성 이미지로 제품의 외형·재질·성능을 실제와 다르게 보이게 하지 않습니다. 광고에서 문제가 되는 건 대개 "AI를 썼다"가 아니라 "실제와 다르다"입니다.
④ 어떻게 만들었는지 기록을 남깁니다
편마다 어떤 도구로 어떤 소재를 썼고 누가 확인했는지 간단히 적어 둡니다. 당장 쓸 일은 없지만, 나중에 질문이 들어왔을 때 답할 수 있는지 여부가 신뢰를 가릅니다. 그리고 이 기록은 인물 일관성 관리에도 그대로 쓰입니다.
브랜드가 시작 전에 정해두면 좋은 것
시리즈를 맡게 되면 첫 미팅에서 함께 정하는 항목들입니다. 나중에 정하려면 이미 만든 편들을 다시 손봐야 합니다.
- 표기 문장 한 줄 — 문구와 위치를 고정
- 금지 목록 — 실존 인물의 얼굴·목소리, 경쟁사 제품, 의료·금융처럼 효과 표현이 민감한 영역
- 소재 출처 — 참조 이미지와 음원의 출처 기록
- 승인 라인 — 발행 전 누가 확인하는지
- 문제가 생겼을 때 — 내려야 할 상황의 기준과 담당자
다섯 번째가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있는 것만으로도 팀이 과감해질 수 있습니다. 되돌릴 방법이 정해져 있으면 시도할 수 있습니다.
신뢰는 표기에서 생기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표기는 신뢰의 최소 조건이지 신뢰 그 자체가 아닙니다. 자막 한 줄을 넣었다고 사람들이 브랜드를 믿게 되지는 않습니다.
신뢰는 같은 인물이 같은 톤으로 계속 나타나고, 했던 말을 뒤집지 않고, 다음 편이 약속한 날에 올라올 때 쌓입니다. 표기는 그 쌓임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한 장치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걸 규제 대응이 아니라 연재 운영의 일부로 다룹니다.
연재로 운영하는 이유는 「캠페인은 끝나고, 연재는 쌓입니다」에, AI와 사람의 역할을 어디서 나누는지는 「AI가 속도를, 사람이 온도를」에 적어 두었습니다.